숙련기술홍보관

이달의 기능한국인

기능한국인이란 ? 10년 이상 산업체 현장실무 숙련기술경력이 있는자로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우수숙련기술자를 대상으로 숙련기술자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 숙련기술자 우대 풍토 조성, 자긍심 고취에 기여하고자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마련한 제도로 매월 1명씩 선정된다.
임성주 대표이사
2016년 02월
선정호
제 108호
이름
임성주 대표이사
소속
(주)케이엠디지텍
회사주소
[16643]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산업로92번길 39
㈜케이엠디지텍
주요생산품목
전선가공용 자동압착기

학력사항
전남기계공고(1977)
수원과학대학(2014)

소속업체
- 업 종 : 제조업
- 주생산품 : 전선가공용 자동압착기
- 사업장 규모 : 상시근로자수(53명), 매출액(130억)
- 소 재 지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산업로 92번길 39

특허 및 실용실안
- 특허
제10-0826314호 “전선탈피기 및 이를 이용한 전선 탈피 시스템” (단독)
제10-0285069호 “전선 탈피 깊이 자동 감지 장치 및 그 방법” (단독)
제10-0433807호 “전원단자 압착기의 펀치높이 조절장치” (단독)
제10-1026227호 “피복절단장치” (단독)
제10-1010206호 “전선탈피 불량 검출장치” (단독)
제10-1338396호 “전선용 단자결착기” (단독)
제10-0974630호 “자동에어 조절이 가능한 전원단자압착기” (단독)
제10-0768538호 “전원단자압착기” (단독)
제10-0952992호 “전선의 탈피 겸용 압착장치” (단독)
제10-0570119호 “전선가공장치의 가공상태 검사방법” (단독)
제10-0446944호 “전선단자 압착장치 및 그 방법” (단독)
제10-0422369호 “전선풀림장치” (단독)
제10-0422366호 “씰 삽입장치” (단독)
- 실용실안
제20-0441532호 “전원단자 압착기의 전선스토퍼” (단독)
제20-0395624호 “전원단자압착기” (단독)
제20-0368211호 “전원단자 압착기의 펀치높이 조절장치” (단독)
제20-0281256호 “전원단자 압착기의 전선 스토퍼구조” (단독)
제20-0281255호 “전원단자 압착기의 이송 피치 조절장치” (단독)
- ISO
ISO9001:2008 “품질경영시스템 인증 (인증범위 : 하네스 자동제어장치의 설계, 개발, 제조 및 유지보수”

주요경력
- 1981 ~1984 공신전자통신 / 사원
- 1984 ~1991 ㈜태평개발 / 사원
- 1991 ~2000 광명전자 / 대표
- 2000 ~현재 ㈜케이엠디지텍 / 대표이사
- 2014 ~현재 수원산업단지협의회 / 회장

주요수상내역
- 2001 우수 자본재 개발 유공 (대통령 표창)
- 2006 무역진흥 유공(삼백만불 수출의 탑) 수상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소개
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수상자 (주)케이엠디지텍 임성주 대표는 전선 절단기 개발을 시작으로 국내 와이어링 하네스(Wiring Harness) 분야를 발전시킨 산 증인으로서 35년 간 경쟁력 있는 기술 상품을 개발해 온 우수 숙련 기술인이다.

해남 시골 소년, 미션스쿨을 거쳐 육군통신학교의 조교가 되다
임성주 대표의 고향은 대한민국 땅끝마을 해남이다. 그는 남들보다 중학교 진학은 2년, 고등학교 진학은 1년이 늦었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제가 공부를 못했던 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평소에 중학교 입학 시험 성적이 전교 20등 안에 들지 못하면, 중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하셨어요. 그때 제가 전교 40등을 했어요. 설마 했는데 진짜 아버지께서 학교를 안 보내주시더라고요. 일 년 정도 집안일을 도우며 그냥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 미래가 걱정되면서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병아리를 키우며 돈을 모아 목포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그가 다니게 된 중학교는 미션스쿨로, 그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진학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선생님은 중학교에 이어 미션스쿨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계속해서 권유 하셨어요. 다른 학교 입학원서는 절대 안 써주신다고 했죠. 목회자가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그냥 또 일 년을 쉬었어요.”

결국 임 대표는 자신의 신념대로 전남기계공고에 입학해 늦깎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제가 기계에 대한 눈썰미가 좀 있었어요. 중학교 때도 기술 과목은 무조건 100점이었어요. 동네 사람들 라디오도 제가 고쳐주곤 했어요. 그리고 군 면제에 대한 계산도 있었죠. 제가 남들보다 3년 늦게 고등학교에 입학했잖아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요량으로 방위산업체에 들어갈 생각에 전남기계공고를 택한 거죠.”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는 법. 임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현역 입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원치 않던 군 입대는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훈련 중에 교관 눈에 띄어 육군통신학교 조교로 선발되었는데, 그 덕분에 통신에 관한 전술ㆍ학술ㆍ기술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고, 이는 그가 첫 직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전자통신 전문가에서 국내 대표 ‘와이어링 하네스’ 개발자가 되기까지
81년 1월, 지인의 소개로 공신전자통신에 입사한 임 대표는 서울시 행정통신망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게 되었다.
“제가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서울시청이 자동 무전통신망으로 한창 교체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필요했던 기술과 지식이 모두 군대에서 배웠던 것들이었어요. 군대에서 배운 기술을 정말 요긴하게 써먹었죠. 군대 가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이때 들더군요.”

임 대표는 3년 간 서울시의 행정통신망 개발에 참여하며 행정 전산화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서울플라자호텔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곳에서 음향 등의 기계 설비 및 장비 관리를 맡았다.
“그동안 했던 일과는 또 다른 일이었죠.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이미 배운 것들이었어요. 기존에 했던 일과 분야는 달랐지만 어렵지는 않았어요. 또, 플라자호텔에서는 매일 다양한 세미나가 열리기 때문에 관련 기계 설비와 장비들을 관리하면서 잡다한 지식을 많이 쌓았어요. 정주영 회장 같은 유명 인사들의 강연도 많이 듣다보니 저절로 자기계발도 되더라고요. 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직장생활 10년 차에 임 대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을 벗어나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사업을 해볼 생각에 자신의 사업을 도와줄 믿을만한 고향 친구도 한 명 불렀다. 하지만 경험부족으로 회사 간판을 내걸 틈도 없이 일 년 만에 사업 자본을 모두 날려 버렸다. 시름에 잠긴 임 대표에게 고향친구는 ‘전선 절단기’ 개발을 제안했다.
“둘이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기계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다른 사람이 만든 기계를 들여다보며 연구하고 공부했어요. 그러니까 신기하게 만들어지더라고요. 이때 작은 쪽방에 ‘광명전자’란 이름의 회사를 세우고, 당시 아는 친구가 ‘전자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 그곳에 우리 ‘전선 절단기’를 들고 가서 홍보했어요. 그런데 정말 우리 기계를 사겠다는 고객이 있는 거예요. 그때 그 기계를 구입한 고객은 지금도 저희 회사의 고객이세요.”

조금씩 꾸준히 광명전자의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임 대표는 이러한 성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없는 브랜드지만 자체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우리 회사는 자존심이 센 회사예요. 절대로 남의 제품을 그대로 베끼지 않아요. 당장의 매출보다는 비전을 생각했죠. 우리만의 개성을 살려 개선점을 찾고 좋은 물건을 만드는데 투자를 많이 했어요. ‘전선 절단기’만 해도 우리가 이 제품을 국산화함에 따라 제품 가격이 40%나 인하되는 효과를 얻었어요.”

이로 인해 2001년, 임 대표는 ‘우수 자본재 개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독자적으로 ‘전선 절단기’ 및 ‘전자식 자동가공장치’ 등을 개발해 회사 입지를 다져가던 중에 임 대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와이어링 하네스(Wiring Harness)와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한 것이다.

파산 위기 극복하고 새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 승부수
“우리 회사가 ‘전선 절단기’를 개발하면서 전선에 익숙해진 회사 아닙니까? 그래서인지 ‘와이어링 하네스’를 90년대 후반에 처음 봤을 때 우리 회사가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동차에는 보통 1,500개의 전선이 들어가는데, 와이어링 하네스는 인체구조로 비유하면 신경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어요. 차량 내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배선 구조물이죠. 우리 회사만의 독자적인 ‘와이어링 하네스’ 제품을 개발하는 데만 3년이 걸렸어요.”

광명전자가 심혈을 기울여 독자 개발한 ‘와이어링 하네스’는 광명전자란 브랜드의 인지도 및 신용도를 향상시켰다. 기존 거래처들을 통해 계속해서 광명전자 개발 상품의 우수성을 전해들은 현대자동차, 삼성 등의 국내 굴지 기업 외에도 2천여 곳의 중소기업들이 광명전자의 ‘와이어링 하네스’를 찾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광명전자와의 몇 차례의 거래를 통해 제품에 대한 신임이 두터워지자 해외공장을 지을 때, 광명전자에 동반진출을 권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들어가는 ‘와이어링 하네스’의 60%가 광명전자의 제품이 되었다.
이러한 광명전자의 ‘와이어링 하네스’의 선전은 ‘와이어링 하네스’ 국산화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와이어링 하네스’ 장비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국내 여러 업체들이 국산화를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던 것을 광명전자가 유일하게 성공시킨 것이었다. 이로써 현재 국산화 대체율은 70~80억 규모로, 국내 시장점유율이 60%를 넘고 있다.

광명전자의 ‘와이어링 하네스’ 장비 개발 국산화 성공은 사세를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2000년 6월, 임 대표는 광명전자의 이니셜을 따 지금의 (주)케이엠디지텍으로 회사를 법인 전환하였다. 그리고 18명의 전문 개발인원을 둔 부설연구소를 만들어 매출액 대비 15% 이상을 R&D에 투자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 전선 장치와 관련한 10개 이상의 발명 특허를 냈어요. 연구개발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우리 회사에는 기술기획실도 있는데, 어떤 제품을 개발하면 좋을지 기술 동향과 고객 니즈를 파악해 연구개발팀에 의견을 제시하죠. 연구개발팀과 기술기획실이 있으니 제품을 만드는 체계가 확실히 잡히더군요.”

임 대표의 이러한 경영 전략은 해외에서도 통했다. 중국, 일본, 터키, 미국 등지에 (주)케이엠디지텍 대리점이 생겨나고, 중국을 비롯하여 멕시코, 캄보디아, 베트남, 이란 등에 제품이 수출되었다. 급기야 2006년에 ‘3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사업이 성장 가속도를 달리게 되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전자부품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중국에 공장을 만들었죠. 그런데 잘 안 되었어요. 30억 이상의 투자금을 손해 봤죠. 결국 신사업 시작 일 년 만에 철수를 결심하고 사업을 접는데 그 과정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위기까지 터졌어요. 그게 2008년도였어요. 기존 부채에 매출까지 떨어지면서 회사가 최대 위기를 맞았죠. 주문이 없어서 직원들이 4시에 퇴근했어요. 이제 곧 망하겠구나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때마침 자동차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다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한 거예요. 회사가 경영난에 허덕이기 시작한 지 일 년 만의 일이었어요. 당시 저를 비롯한 우리 직원들은 6개월 간 주문이 밀려서 박스를 깔고 공장에서 자야 했어요. 피곤에 지칠만도 하지만, 직원들이 그러더군요. ‘야근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요.”

이렇게 극과 극의 희비(喜悲)를 경험한 (주)케이엠디지텍은 올해 와이어링 하네스의 새 브랜드, ‘LIMS'의 론칭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8년 간 공들여 만든 제품이기에, 그동안 상품 연구?개발에 중점을 둔 ‘개발의 (주)케이엠디지텍’이었다면 올해는 ‘영업의 (주)케이엠디지텍’으로 전략을 바꿔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수를 걸 예정이다.

제일 가치있는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
연매출 130억 원, 기업신용등급 AA의 건실한 강소기업인 (주)케이엠디지텍으로 성장시키기까지 많은 풍파를 겪었던 임 대표. 그는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귀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성공은 저 혼자 잘 해서 잘된 게 아니라 주변에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줬기 때문에 잘 된 거예요.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베풀고 싶어요. 저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사회가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좋은 밑거름이 되고 싶은 것... 이게 제 개인적 소망이라면 소망이고 신조라면 신조라 할 수 있겠죠.”

이 때문에 임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지역 사회활동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지역 불우이웃돕기 행사에 여러 차례 쌀 100포 이상을 후원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평동 동사무소’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밥차 구입비 전액(약 1,80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회사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 사비까지 들여가며 저소득층 자녀의 학자금도 월 100만원씩 지원하며 나누는 삶에 앞장서고 있다. 그만큼 직원들에 대한 투자도 과감하다.
“매년 직원들의 해외 교육 세미나를 추진하고 있어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면 견문이 넓어지면서 업무 감각도 함께 성장해요. 기술 관련 회사는 무엇보다 직원들의 장기근속이 회사의 성장을 돕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직원들을 독려할 수 있어야 해요.”
임 대표는 이외에도 직원들의 사기 독려와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 근무 연차별에 따라 대학학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주말농장과 산악 및 볼링 등의 사내 동아리를 운영하여 직원들의 문화생활 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여사원들이 결혼과 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 2세 미만 영유아를 가진 여사원의 경우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편, 임 대표는 2011년부터 수원과학대학교와 MOU를 체결하여 매년 실습생 교육 훈련과 채용에 앞장서며 후학 양성에도 크게 힘쓰고 있다.
“학교와의 MOU 체결을 통해 매해 1명 이상 채용하려 하고 있어요.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나중에 교육 사업을 하는 거예요.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제가 배우고 터득한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힘든 시대에 먹고 살 수 있도록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죠. 그게 진짜 제대로 된 복지, 최고의 복지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그는 성공한 우수 숙련기술인이자 기업가로써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기술을 가졌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가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같은 기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옛말에 기술이 있으면 밥 굶는 일은 없다고 했죠. 자신만의 기술이 있으면 사회생활에 가장 큰 무기가 됩니다. 그러니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세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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